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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신앙 챌린지(눅6:27~38)-2025.2.23.주현일 후 일곱째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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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임목사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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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https://youtu.be/-SiuTqfXh3I?si=SU88CDiyEECktGwT


(본문 중)


고대 근동에는 많은 나라의 법전에 영향을 준 함무라비 법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법전은 기원전 18세기, 바벨론의 왕 함무라비가 만든 성문법입니다.

이 법은 탈리오의 원칙에 근간을 둔 것으로 우리나라 말로는 동해보복법이라고 합니다.

받은 만큼 돌려준다

이것이 탈리오의 원칙입니다.

어린이 설교 시간에서도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출애굽기 21장 말씀을 들으셨지요?

이것도 탈리오의 원칙 중 하나입니다.

 

당시 이 법은 굉장히 진보적인 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고대 사회에서는 무제한적인 복수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해를 받으면, 열로 갚아주었습니다.

이로 인해 복수는 복수를 낳았고, 한 번 원수는 영원한 원수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복수가 대물림 되기도 했습니다.

부모의 원수는 자식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고대 사회에서만 그랬을까요?

제가 어렸을 때 홍콩이나 중국 영화가 유행이었는데, 많은 영화에서 부모나 친구의 원수를 갚는 것이 영화의 테마였습니다.

근대에서도 복수의 대물림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제지하기 위해 동해보복, 동일한 해로 보복하는 것이 법으로 정해진 것입니다.

이 법은 여러 법의 기초가 되었고, 꽤 오랜 시간 지켜져 왔습니다.

로마 시대에서도 이 동해보복법이 존재하고 있었고,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는 아직도 동해보복, 탈리온의 원칙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서도 마찬가지였겠지요?

사람들은 출애굽기 21장의 말씀에 따라 앙갚음 했습니다.

눈은 눈으로 돌려주었고, 이는 이로 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율법에 따라 진행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런 율법의 명령을 전부 뒤집어 놓습니다.

원수에게 앙갚음을 선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27).

미워하는 자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선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고, 모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28).

이는 당시의 사회상에서도, 지금 우리의 시대에서도, 어느 나라나 문화에서도 있지 않은, 있을 수가 없는 명령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왜 이런 명령을 하셨을까요?

게다가 이 명령은 율법을 따르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율법대로라면 공평하게 받은 만큼 돌려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돌려주는 것도 아니고, 피하는 것도 아니고, 참는 것도 아닌 전혀 다른 대응을 명령하십니다.

왜냐하면 이런 율법조차도 진정한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가복음 10장에는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이 이혼을 놓고 논쟁하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이 논쟁은 이혼에 대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율법에 대한 논쟁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에 따라 아내에게 이혼 증서를 주고 버리는 것이 옳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이혼을 반대하시며, 율법을 들고 온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10 5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하나님께서 이혼을 허락하신 이유는 사람의 완악함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이혼을 금지하게 되면, 당시 힘이 없는 아내들은 남편의 사랑도 못 받을 뿐만 아니라 무시나 괴롭힘도 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최악을 막기 위해 차악을 선택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율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사람의 완악함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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