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배척의 세대(눅4:16~30)-주현일 후 셋째 주일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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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https://youtu.be/A3hn76C3H_U?si=rh0au8tudxb6zmha
(본문 중)
예전에 여러분들과 성경공부를 하면서,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차이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출신의 차이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사가랴라는 현직 제사장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의 어머니인 엘리사벳도 아론의 자손이었습니다(눅1장).
아버지, 어머니 둘 다 제사장 계열이었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제사장의 아들은 제사장이 됩니다.
즉, 세례 요한도 신분적으로는 제사장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이었습니다.
물론 아버지 요셉이 다윗의 계열이기는 하였지만, 수 백년이 지난 뒤였기에 의미가 없었습니다.
우리 나라 김씨, 이씨, 박씨처럼 그냥 조상이 왕이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에게는 늘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는 말이 있었을 것입니다.
결혼도 하기 전에 마리아가 임신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라는 말 안에는 많은 의미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내가 너를 잘 아는데 어떻게 선지자라는 말이냐”라고 예수님을 거부한 것뿐만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조롱과 빈정거림도 섞여 있었습니다.
나사렛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신분과 출생과 과거 등을 문제 삼은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예언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모르실 예수님이 아니지요?
사람들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고, 조롱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아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엘리야와 엘리사 이야기를 하십니다.
이 이야기의 중점은 하나님의 은혜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에게 내려졌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화를 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방인에게 내려졌다는 말은 유대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건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는 자신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자신을 거부한 사람들 앞에서 이방인에게 내려진 은혜를 말씀하십니다.
우리 이방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당연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했으니, 하나님의 은혜가 이방인들에게 내려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거부한 것과 하나님의 은혜는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자신들은 예수님의 출생과 출신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사렛의 사람들, 즉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화를 냅니다.
선지자도 아닌 한낱 목수의 아들이 감히 하나님의 은혜를 논하고, 그 은혜가 이방인에게 내려졌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낭떠러지로 끌고 갑니다.
신성모독과 같은 말은 하는 예수님에게 본 때를 보여주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여기서 예수님의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낭떠러지로 밀어 떨어뜨려 했을 때, 예수님은 그들 사이로 지나가십니다.
누구도 예수님께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
나사렛에서 일어난 예수님의 기적은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 쫓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의 가운데로 지나가신 것.
이것이 나사렛에서 일어난 예수님의 기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적은, 또 하나의 과거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창세기 15장에 쓰여져 있는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계약 장면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고, 아브라함과 자손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계약을 맺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3년 된 암소와 암염소와 숫양과 비둘기를 가져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새를 제외한 모든 것을 쪼개어 마주보게 하라고 명하십니다.
해가 져서 어둡게 되자 하나님의 불이 쪼갠 사체 가운데로 지나갑니다.
이것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계약이 체결됩니다.
제 생각에 예수께서 사람들 사이로 지나간 것은, 이를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은 계약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여러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들 가운데로 지나가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메시아를 보내셨습니다.
이 약속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나사렛의 사람들,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옳다고 바르다고 생각합니다.
왠만한 것은 다 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배척하고, 자신들의 비위를 건들면 용서하지 않습니다.
이는 정치나 우리 사회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도, 교단 안에서도 일어납니다.
자신들의 열심이, 자신들의 공의가, 자신들의 앎이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패가 갈라지고, 서로의 잘못을 들추어 내고, 배척하게 합니다.
우리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단지 지금은 우리 교회가 작아서 그런 일이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교회가 성장하고 커지면, 우리도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사랑을 내세워야 합니다.
용서를 내세우고, 화목을 내세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낭떠러지로 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복수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그 사이로 지나가시는 기적을 행하셨고, 이 기적을 통해 하나님과의 계약을 연상시키게 하셨습니다.
이는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잘잘못을 따지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일에 앞서서 사랑을 먼저 내세우고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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