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힘들지만 정당하게 해야 합니다(눅3:1~14)-2024.12.8.대림절 둘째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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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https://youtu.be/mkkitxMK45s?si=1wSjfz7rAosBd1tJ
(본문 중)
세례 요한이 등장했던 시기는 바로 이런 때였습니다.
폭정으로 인해 유대에는 왕이 없었고, 모든 행정이 로마 아래 있었으며, 대제사장도 2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로마의 뜻이 모두를 다스리고 있었고, 모든 피해는 백성들만이 오롯이 입고 있었습니다.
이런 시기에, 모두가 힘들어하는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 있는 세례 요한에게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의 역사에 개입하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로마의 총독이 있고, 대제사장이 2명이나 있는 유대에서 주로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의 요단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예언자 이사야의 예언과 같았습니다.
오늘의 복음서 4~6절의 말씀에 그 이사야의 예언이 쓰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예언은 두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볼 것이라는 것입니다.
곧 메시아가 임할 것이라는 예언이었습니다.
요한이 이 예언대로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자 사람들은 몰려들었습니다.
메시아가 오는 것을 영접하기 위해, 구원을 얻기 위해 세례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세례를 율법이 정한 정결례처럼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몸을 씻어 깨끗하게 하면, 심판을 면하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꾸짖습니다.
회개의 세례는 정결례처럼 씻는 것으로 깨끗하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복음서 8절에서 세례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씻는 것이 끝이 아닙니다.
세례를 받는 것이 끝이 아닙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
이것이 회개의 세례의 목적이고, 메시아를 맞이하는 사람들이 준비해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은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라고 합니다.
이것은 더 이상 아브라함에게 기대거나 그의 업적을 팔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사야 41장 8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라고 부르십니다.
이것을 근거로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친구였기 때문에 자신들도 그렇게 대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업적을 후대도 가질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참 신기하지요?
아브라함의 업적과 덕망이 자신들의 것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니 말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모습을 지금 우리 주변에서 또 우리 자신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열매가 없고, 열매를 맺을 생각도 없는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착각하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열매와 공존합니다.
열매 없는 믿음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믿는다면 당연히 선한 행동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루터교회에서는 믿음과 선행, 또는 믿음과 성화를 나누지도 않았습니다.
나눌 필요가 없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우리 신앙인들 가운데 선행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는 열심히 나오고, 예배는 열심히 드리지만, 이웃에 대한 사랑과 배려와 그들을 돕는 것에는 무감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말은, 선행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말과 같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하나님과 이웃을 동시에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선행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참 불편한 일입니다.
손해보는 일도 생기고, 힘든 일도 생기고, 참아야 하는 일도 생깁니다.
내 물질만이 아니라 시간도 여유도 빼앗길 수 있습니다.
좋은 일을 한다고 하나님께 특별한 상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런 선행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은, 이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외치는 것이 아니라, 선행으로 주님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
이것이 참 믿음이고, 열매 맺는 신앙입니다.
세례 요한이 요구한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를 명확히 알지 못합니다.
무엇이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동안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해야만 했던 선행에 대한 고찰이 없었던 것입니다.
10절의 말씀입니다.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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