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네브라에)빛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다(요1:5)-202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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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https://youtu.be/8hIWocuRDy0?si=_yjiUqY4a8X5EQzB
(본문 중)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말씀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지으실 때 말씀으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생명으로 이 세상 만물이 지으심을 받았기 때문에, 이 세상 만물에는 생명이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 되었습니다.
캄캄한 어둠 가운데 빛이 비취면 모든 것이 환하게 보이는 것처럼…
아무것도 없는 세상, 어둠과 같은 세상에 빛이 비취었고, 모든 것이 빛과 같이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그 빛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빛이 이 세상에 비추었지만 깨달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빛 가운데 지으심을 받았지만, 빛을 외면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 빛을 삼켜 버렸습니다.
자신의 사리 사욕을 위해서,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자신의 정욕을 따라서…
빛을 외면하고, 깨닫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그 빛을 십자가로, 죽음 가운데로 던져 버렸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사람들에게 이 빛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쫓아 살아야 하는지, 우리가 어떤 진리를 깨달아야 하는지를 알리기 위해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욕심 가운데 있던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어떤 이는 예수님이 빛임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기적과 하시는 모든 일을 통해 예수님이 빛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지는 않았습니다.
알지만 외면했던 것입니다.
어떤 이는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기적에 매료되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앞섰고, 자신의 뜻이 먼저였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자신과 다른 예수님을 배반하고 버렸습니다.
어떤 이는 끝까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끝까지 예수님과 함께 간다고 결심하고 또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위협 앞에, 어둠의 공포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나는 그를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어떤 이는 처음부터 예수님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세우고 결정한 것에 다른 의견을 내고 반대하는 예수님이 미웠습니다.
자신들의 자리를 자꾸만 위협하는 것 같아 싫었습니다.
다른 이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 질투가 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하였고,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의 뜻이, 자신들의 정의가 승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알지만 진리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자신의 뜻과 생각을 내세우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의 위협과 공포에 무릎을 꿇는 사람들 때문에…
자신들의 유익과 자리를 지키려는 사람들 때문에…
그렇게 빛은 어두움에 삼킴을 당했습니다.
우리의 빛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성금요일인 오늘…
우리가 읽은 7개의 복음서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외면하고, 버리고, 배신하고, 죽였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여러 이유와 변명 아래,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늘 자신이 먼저였고, 자신의 가족이 먼저였고, 자신의 공동체가 먼저였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따랐지만, 자신의 삶과 어려움 앞에서는 도망치기 일쑤였습니다.
고난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아픔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빛이 어두움에 삼키는 것을 구경하였고, 빛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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