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제자들이 들어야 하는 이야기(눅6:12(17)~26)-주현일 후 여섯째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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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https://youtu.be/DAmgPFct31U?si=0JnxNPwRpiywaYil
(본문 중)
오늘의 복음서는 예수님의 기도로부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셨고, 밤이 새도록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날이 밝자,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수 많은 제자들이 모였고, 예수님은 그 중에 12명을 택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 12명, 즉 12사도가 많은 제자들 가운데서 뽑힌 것입니다.
이를 위해 예수께서는 밤이 새도록 기도하신 것입니다.
사도라는 말은 헬라어로 아포스톨로스라고 합니다.
이는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예수님으로부터 파견된 사람을 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 중에서 세상에 보낼 사도들을 직접 선발하셨습니다.
그 중에는 전직 어부도 있었고, 세리도 있었고, 반정부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예수님을 배반할 가룟 유다도 있었습니다.
참 신기하지요?
이들 모두 예수님께서 밤이 새도록 기도한 후에 택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선택이 하나님의 뜻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민족의 반역자로 취급받는 세리도, 반정부군도, 예수님을 배반할 사람도 메시아의 사도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메시아의 사도로 부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거룩하고 경이로운 일입니까?
우리의 생각으로는 흠이 없는 사람,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이 사도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도 하나님도 흠이 많고, 결격 사유를 가진 사람들을 사도로 택하셨습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을 배반할 사람까지도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나타내는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이고, 둘째로 하나님의 일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제자들이 이런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으로 볼 때는 터무니없는 일입니다.
당치도 않습니다.
결격 사유가 충분한 사람들이 사도라니!! 말도 안 됩니다.
우리의 관점으로는 명백한 예수님의 실수처럼 보입니다.
잘못하신 일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선택이 주님의 뜻이라면, 제자들은 이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실수처럼 보이는 일을 통해 또 다른 일을 준비하실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이는 잘못한 일을 그냥 덮자는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우려와 걱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반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노예로 파는 일을 통해 이스라엘을 가뭄에서 구하셨습니다.
젊은 날의 모세의 실패로 이스라엘을 이집트로부터 구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이라면, 우선은 주님의 선택을 받아들여야 하고, 믿어야 합니다.
잘못된 일들은 반드시 심판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잘못된 일들에 눈 감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를 믿고 주님의 선택을 따르는 것, 이것이 제자들에게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일이었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예수께서는 12사도들과 다른 제자들과 함께 평지로 내려오십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예수님을 찾아온 많은 사람을 만나십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해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고 고치셨습니다.
각종 병으로부터, 더러운 귀신으로부터 그들을 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아닌, 제자들을 향해 복과 화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복과 화에 대한 말씀은 전적으로 제자들을 향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복이 있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화 있는 사람들입니다.
복 있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억압당하는 사람들입니다.
화 있는 사람들은 부요하고 칭찬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제자들에게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복 있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주린 사람들입니다.
우는 사람들이고, 예수님으로 인해 박해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이는 실제로 가난하고, 주리고, 그래서 우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의 요청을 거절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에서도 이런 사상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 물질을 내어 놓았고, 가난한 자들은 부자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1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26~27절)”
이 뿐 아니라 복음 역시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주로 전해졌기 때문에, 예수님은 가난을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제자들만을 향한 것이었고, 22절에는 예수님으로 인해 박해받는다는 말이 있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게다가 가난 자체가 구원받는 조건이 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은 가난이 복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가난한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니 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 인해 가난해진 사람들, 주린 사람들, 우는 사람들에게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 또 예수님으로 인해 여러 해를 입는 자는 복이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부요한 자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화 있다는 것은 불행하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불행해지는 것은 그들이 돈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그들이 가진 돈 때문에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부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부자가 되서 걱정 없이 이 세상을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자가 되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자신의 부와 번영에 만족해서 그 이상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솔로몬이 처음 왕 위에 올랐을 때, 그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였습니다.
이를 귀하게 여긴 하나님께서는 그가 구하지 않은 부와 명예도 허락하셨습니다.
솔로몬의 영토는 다윗의 영토보다 컸고, 솔로몬의 영광 역시도 다윗보다 컸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모든 것을 자신의 손에 넣게 되자, 그는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방신을 들여왔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이방신을 위해 예루살렘에 신전을 지었고, 아내의 꼬임에 빠져 이방신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두 번이나 솔로몬에게 나타나셨고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이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솔로몬을 떠나셨고, 나라가 반으로 갈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열왕기상 11장에 쓰여져 있습니다.
부자가 되고 싶지요?
돈 걱정 없이 살고, 부러움을 받으면서 살고 싶지요?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런 부요함이 우리에게 오는 하나님의 나라를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보다 돈을 더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작고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움을 늘 구하지만, 교회가 커지고 부요하게 되면 하나님의 자리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게 될 지도 모릅니다.
수많은 교회가 그러했고, 역사가 이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부요하고 배불러서 웃는 자에게 화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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